깨달음의 빛, 청자(47회)

작성일
2024.01.11 15:30
등록자
임아현
조회수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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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남섭 작성일2024-01-16 10:57:24

    최충헌, 최우, 최항으로 이어지는 철권 무신 정권아래서 청자주전자를 만난 것이 천재일우라고 말하는 나름의 차 문화와
    강진 고려 청자 문화, 시작 부터 숱한 질곡의 청자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처 나오는 자랑스러운 청자이야기도 이제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작가님, 강진군청 관계자 여러분 모두 우리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감사합니다

  • 김걸 작성일2024-01-15 08:30:00

    청자주전자 몸체의 상부와 하부는 크고 작은 연꽃봉오리 무늬가 겹쳐 있었다.
    한눈에는 조롱박처럼 보였다.
    뚜껑은 꽃봉오리 모양을 했고,
    몸체 목 부분에는 두 손으로 연꽃을 든 동자가 있고,
    인동초 덩굴을 부드럽게 구부려 붙인 모양의 손잡이 위에는 개구리 조각이 얹혀 있었다.
    술이나 차가 나오는 부리는 연잎을 말아 붙인 형상이고,
    동자와 개구리의 눈은 갈색 철사점(鐵砂點)이 선명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과감한 착상은 연꽃봉오리 무늬를 동(銅, 구리)이 들어간 붉은 진사로 그린 점이었다.
    청자에 진사로 무늬를 그린 것은 고종 이전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장식이기 때문이었다.
    빛깔은 투명한 담녹색이었지만 유약이 골고루 녹지 않아 하단 일부는 미세한 기포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몸체와 뚜껑의 수려함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한 점 보배의 겉모양을 설명하는 것을 상상으로 그려보니 그 모습이 절묘하다

    탐진현 도공들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하늘의 솜씨이다.

  • 위승환 작성일2024-01-14 11:51:40

    최항이 천재일우로 여겨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물로 아끼던 청자주전자,
    왕의 행차 때만 꺼내라고 했던 그 청자주전자를 직접 대한 듯 상상하게 하는 회였다.
    그 아름다운 청자주전자를 위해 도공은 심혈을 기울였을 것 아닌가.

    언젠가 정찬주 작가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생각해 보았다.
    "작품을 낸다는 것은 어설픈 망치질이 아니라 보석을 세공하듯 해야 한다."
    청자주전자를 만든 도공도 결국 실로 가늠할 수 없는 정성을 기울였으리라.

    글재주가 없는 나도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쓰면
    후일 과연 누군가 최항처럼 귀하게 여겨줄 수 있을 것인가.

  • 박명숙 작성일2024-01-13 19:59:09

    최항이 귀물로 생각하는 청자주전자,
    청자주전자를 만난 것이 천재일우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공감합니다.
    완벽한 연꽃무늬와 조각들
    그리고 청자에 진사로 무늬를 만든다는 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그처럼 귀하게 여기는
    소장자가 있어 당시 도공은 더없이
    행복했을 듯합니다.

  • 조영을 작성일2024-01-12 13:41:05

    등신불

    불교에 해박한 작가의 역량이
    놀라울 뿐이다.
    법정 스님에게서 無染이라는
    법명을 받은 이유를 알겠다.
    열반에 들기 전 스님들의 게송이
    나를 깨치는 죽비소리로 들린다.

    요세,천인 등 국사로 추앙받은
    스님들의 청자상을 만드는
    도공들의 정성을 보니,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이 생각난다.
    인간사의 번뇌를 극복하고자
    소신공양했던 만적선사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을 씌워 불상을 만드는 이야기.

    백련사는 동백으로 유명하지만,
    혜장 선사와 정약용이 승속을 떠나
    학문과 차를 나누었던 곳이다.
    작가의 소설 '다산의 사랑'에
    그 사연이 잘 그려져있다.
    혜장의 길,다산의 길,청자의 길 등이
    21C 강진을 먹여 살리는 문화의 길이
    되기를 기대한다.

    천인,천책이 국자감에서 유학을 공부하다
    만덕산 백련사로 출가한 것을 보니,
    탄허 스님과 양주동 박사의 연이 생각난다.
    뛰어난 천재들이 인간사를 풀지 못했을 때
    그 한계를 뛰어 넘고자 찾은 것이 종교가
    아니었나 싶다.

    거란과 몽골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대장경을 만드는 최우를 보니,
    통도사의 성파 스님이 떠오른다.
    민족통일의 염원을 담아 십년에 걸쳐
    도자대장경을 만든 것이다.
    또 서운암 앞마당에는 울주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를 나전칠기 기법으로
    물속에 재탄생시켜 놓았다.
    물속 고래들이 힘껏 뛰쳐 올라
    문화 융성의 기운을 만방에 떨치길
    소원해본다.

    김통정,배중손과 삼별초가 나오는 걸
    보니 몽골의 침략과 무신정권 몰락의
    폭풍전야처럼 느껴진다.
    그 가운데 강진 청자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燁燁優鉢 朝華夕衰
    翩翩金翅 載止載騫
    빛나는 우담바라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시들었네
    펄펄나는 금시조
    앉는가 했더니 곧바로 날아갔네
    -다산이 혜장이 40에 죽자 지은
    탑명의 첫 구절